2018년 3월 31일 처음 작성한 글
어제 마지막 합격 발표가 나면서, 저의 'MBA 지원 과정'이라는 대단원이 끝났습니다.
저는 총 5개 학교에 지원했고, 모든 학교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1. Michigan Ross 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고
2. Cambridge Judge 합격 메일,
3. Oxford Said 합격 편지,
4. London Business School 합격 편지,
마지막으로 (5) INSEAD MBA 합격 편지를 받았습니다.
MBA에 관해 동경하는 마음만 앞설 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준비를 시작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학교들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다니요.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나네요.
우선 읽는 분들께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생각한 합격 요인들을 정리해 보았어요. 물론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분석이에요 :) 참고로 제 지맷 점수는 최근 상향 평준화 추세를 고려해보면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1. IELTS Overall 8.0이라는 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았나 싶어요.
모든 MBA 입학 담당자 마음속에는, '한국/일본인들은 점수가 좋다고 뽑아 놓으면 정작 수업에 와서 말 한 마디 못하더라'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 교수들, 입학 담당자 모두 MBA에 와서 학생들끼리 많이 배우길 바랄 텐데, 영어를 못하거나 말을 못하면 상당히 난감하겠지요.
그래서 Non-native를 뽑을 때 - 특히 전통적으로 영어 스피킹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일본인을 뽑을 때 - 영어점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좋은 영어점수는 입학 담당자들에게 상당히 효과적인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2. Asian + 여자 + 테크 경력 조합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땐 주위에 똑똑한 여자 친구들이 참 많았어요. 중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친구는 늘 여학생이었고 대학교 경영학과 수석도 여학생이었고요. 그런데 입사 면접 보러 갈 때부터 여자분들이 많이 줄더니, MBA 지원할 때쯤 되니깐 여자분들이 정말 정말 적더라고요. 특히 미국/유럽인 지원자들 중에는 여자분들이 꽤 있는데, 동양인 여자 지원자는 정말 희귀(?) 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모든 Top MBA 입학 담당자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Demographic으로 클래스를 구성하고 싶다'라는 희망사항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이런 고려를 안 하면 클래스의 80프로가 '인디언 + 남자 + 엔지니어' 조합으로만 채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동양인 + 여자 + 테크 경력은 좀 희소했나 봐요. 아마 제 합격 요인의 가장 큰 이유는 '희귀한 Profile' 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MBA에서는 '오대양 육대주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저도 여기저기 꽤 돌아다녔더라고요.
3. 에세이 및 인터뷰에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적었어요
저는 원래 반골 기질 (?) 같은 게 약간 있어서 시키는 대로 잘 하는 듯하면서도 의외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면이 있어요. 에세이에서도 약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에세이 컨설팅을 잠깐 알아보다가, 남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잘 안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은 돈대로 쓰고 결국 내 마음대로 할 것 같다는 게 눈에 보여서 컨설팅은 안 썼습니다. 그 대신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썼어요.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게 '나의 biggest fear는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가장 motivate 하는지'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모든 에세이 주제를 곰곰이 뜯어보면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한다고 생각해요.
에세이 쓰면서 이런 이미지를 많이 생각했었어요.
비즈니스 프로페셔널로서의 야망, 직업적 motivation 은 상단의 빙산의 일각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밑에는 살면서 쌓여온 더 본질적인 두려움, 내가 벗어나고 싶은 것들 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모두 그런 게 있지 않으세요?
우리는 과연 무언가를 간절히 추구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일을 할까요?
간혹 지긋지긋한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어떤 행위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의 경우엔 그것이 비 주체적인 삶,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인생 이었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버둥거렸던 인생이 지금의 제 모습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에세이에서 '졸업 후에 컨설팅 하고 싶어요, 뱅커 할래요, 테크 커리어 쌓을래요' 라고 말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나 홍길동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러 저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지' 에 대해 얘기하려면 더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남과 비슷비슷한 one of them, 수많은 컨설턴트 워너비로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4. 네트워킹은 진실되게, 그리고 즐겁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네트워킹이 정말 그렇게 필수적이라면 즐겁게, 이 기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을 갖고 만났습니다. 그중에서는 정말 생각 외로 더 가까워진 사람도 있었고요.
Top MBA 학교의 서울 방문 이벤트 혹은 MBA Tour에 가면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하죠. 그냥 맹숭맹숭 있어도 난감한데 와인 한 잔 쥐여주면 사실 더 난감했던 기분 아시나요? 처음엔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떻게 네트워킹을 하는 건가 싶었어요.
우선은 비슷한 경력이나 업계, 혹은 같은 학교, 같은 회사 분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어요. 사실 같은 업계 분이면 할 말이 조금이라도 있지요. 그리고선 연락처도 교환하고, 열심히 학교 조사를 한 후에 (최소한 인터넷에 있는 질문은 하면 안 되니까요), 어느 정도 고급 질문을 해야 할 때 연락드리기도 하고, 같은 회사에 계신 분들과는 커피도 마시곤 했어요. 1:1 이 불편할 때는 '지원자 2명 : Alumni 1명' 이런 조합으로 만남을 주선해 보기도 하고요.
Alumni 도 사람이고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기계적으로 학교 정보만 물어보면 좀 피곤하시겠죠. 사람 사는 얘기도 좀 하다 보면 학교 정보도 심층적으로 알 수 있고, 진짜 호감이 가는 학교를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포인트들이 앞으로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한 팁이 되면 좋겠습니다.
늦어도 4월까지는 어느 학교로 갈지 최종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웃분들께서도 학교 장단점에 대해 의견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원래 제가 생각한 게 있다고 믿었는데, 의외로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우선 이번 주말은 좀 홀가분한 마음으로, 맥주 한 잔 마시고, 영화 한 편 보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어요 :)
p.s. MBA와 별개로 The University of Melbourne, Master of Information Systems 과정에도 지원했었고, 생활비 지원 장학금과 함께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고민을 꽤 했었는데, 결국 호주 석사는 마음을 접었답니다.
아마 제게 가족이 있고, 아이를 키운다면 고민 없이 호주에 갔을 것 같아요. 아이들 키우기엔 너무 좋은 곳이니까요! 그렇지만 혼자 가서 장기로 지내기엔 약간 단조롭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좀 더 커리어를 발전시키기엔 MBA를 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결론 내리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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